(adsbygoogle = window.adsbygoogle || []).push({});

티스토리 뷰

목차



    반응형

     

    1. 3세기 위기 

    로마 제국은 2세기 말부터 3세기에 걸쳐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이를 3세기 위기라고 부르는데 3세기 위기는 외부의 침략, 내부의 반란, 경제적 붕괴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습니다. 특히 외부의 침략은 가장 큰 위협이었으며 로마 제국은 북쪽에서 게르만족, 동쪽에서 사산 왕조, 북아프리카에서 반달족 등의 침략을 받았습니다. 게르만족은 로마의 국경을 넘어 이탈리아 본토까지 침입했고, 사산 왕조는 로마의 동방 영토를 공격했습니다. 반달족은 북아프리카를 장악하고 지중해를 위협했습니다. 내부의 반란도 로마 제국의 위기를 심화시켰습니다. 군인 황제들이 등장하면서 황제의 권위가 약화되었고, 지방에서는 반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2세기 말부터 3세기까지 약 50년 동안 로마 제국에는 20명이 넘는 황제가 등장하였고 이처럼 황제가 자주 교체되면서 제국의 안정은 크게 위협받게 되었습니다. 경제적 붕괴도 로마 제국의 위기를 가속화했습니다. 로마 제국은 노예제에 기반한 경제 체제를 가지고 있었는데, 노예의 수가 급격히 감소하면서 생산력이 떨어졌고 교통과 상업로가 파괴되면서 물자 이동이 어려워졌으며 이로 인해 물가가 상승하고, 민생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284년, 디오클레티아누스가 황제로 등장하였고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2.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개혁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개혁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 사두정치 체제의 도입, 둘째, 중앙집권 체제의 강화, 그리고 셋째, 사회적 개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사두정치 체제는 제국을 동서로 양분하여 각각의 정제(Augustus)가 맡고, 각각의 정제는 부제(Caesar)를 하나씩 두어 방위 분담을 하여 통치하는 방식입니다. 사두정치 체제는 제국의 통치권을 강화하고, 외부의 침략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사두정치 체제의 도입으로 로마 제국은 동서 양쪽으로 나뉘어 각기 다른 정제가 통치하게 되었습니다. 각 정제는 서로 협력하면서 제국을 통치하였고 외부의 침략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습니다. 사두정치 체제는 로마 제국의 안정을 되찾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하였지만 황제의 권한을 분산시켜 제국의 통일성을 약화시키는 부작용도 있었습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중앙집권 체제의 강화를 위해 행정 조직을 개편하여 황제의 권위를 강화하였고 군대를 정비하고, 세금을 균등하게 징수하는 등 제국의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노력 하였습니다. 또한 행정 조직을 개편하여 황제의 권한을 강화하였으며  황제 직속의 행정 기관을 설치하고, 지방 행정 조직을 강화했습니다. 군사적으로는 군대의 규모를 늘리고, 군인의 복무 기간을 연장하였으며 군대의 훈련을 강화하고, 군대의 장비를 개선하는 등 국방력을 강화 했습니다. 그는 사회적 개혁의 일환으로 세금을 균등하게 징수하여 제국의 재정을 확충 하고자 했는데 모든 시민에게 세금을 부과하고, 세금 징수 체계와 세금 징수에 대한 감독을 강화했습니다. 이러한 중앙집권 체제의 강화를 위한 그의 노력은 로마 제국의 통치를 효율적으로 하고, 제국의 안정을 유지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사회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여러 가지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예를 들어, 그는 노예의 해방을 제한하고, 직업과 계급을 엄격하게 규제했습니다. 또한, 그는 기독교를 박해하여 기존의 종교 질서를 유지하려 했습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노예의 해방을 제한하여 사회 질서를 유지하려 했는데 왜냐하면 노예의 수가 감소하면서 생산력이 떨어지고, 사회 불안이 증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노예의 해방을 제한하여 사회 질서를 안정시키려 했습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직업과 계급을 엄격하게 규제하여 사회 질서를 유지하려고 하였는데 당시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심화된 계층 갈등을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직업과 계급을 엄격하게 규제하여 안정시키려 했습니다. 이러한 개혁은 로마 제국의 사회 질서를 확립하는 데 기여했지만 사회적 갈등을 완전히 해결하지는 못했습니다.

     

    3.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개혁의 부정적 평가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개혁은 위에 설명 한 대로 3세기 위기를 극복하고 로마 제국의 안정을 되찾는 데 큰 역할을 하였지만 로마 제국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습니다. 노예제 경제 체제의 한계, 군인 황제 제도, 그리고 사회 갈등은 여전히 존재했는데 이러한 문제들은 로마 제국의 붕괴를 앞당기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개혁의 부정적 평가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개혁의 근본적인 한계입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개혁은 로마 제국의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임시방편적인 조치였으며 따라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둘째, 개혁의 부작용입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개혁은 로마 제국의 통치 체제를 전제군주제로 바꾸는 데 기여했습니다. 전제군주제는 황제의 권력이 절대적인 체제로서, 자유와 인권을 제한하는 결과를 초래했으며 중앙집권 체제의 강화는 지방의 자치권을 약화시켰고, 사회 갈등을 심화시켰습니다. 또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황제의 신성성을 강조하고, 황제의 권위를 절대적인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조치는 전체주의적인 사회를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셋째, 개혁의 후유증입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개혁은 로마 제국의 안정을 되찾는 데는 성공했지만, 로마 제국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습니다. 따라서, 로마 제국의 붕괴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