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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등장
콘스탄티누스는 서기 272년 2월 27일에 지금의 루마니아에 있는 나이소스라는 도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로마 황제인 콘스탄티누스 1세이고, 어머니는 하녀 출신인 헬레나였습니다. 콘스탄티누스는 17세에 아버지의 군대에 입대하여 전쟁터에서 활약했으며 어렸을 때부터 용맹하고 지략이 뛰어났습니다. 20세에는 아버지로부터 갈리아와 브리타니아를 통치하는 총독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콘스탄티누스는 총독으로 재직하면서 뛰어난 행정 능력을 발휘하였으며 갈리아와 브리타니아의 경제를 발전시키고, 군대를 정비하여 로마 제국의 북방 국경을 지키는 데 힘썼습니다. 또한, 그는 어려서부터 기독교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는데 이는 어머니인 헬레나는 기독교 신자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헬레나는 콘스탄티누스가 어렸을 때부터 기독교의 가르침을 들려주었고, 콘스탄티누스도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기독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콘스탄티누스 1세가 306년에 사망하자, 콘스탄티누스는 로마 황제 자리를 놓고 동생인 콘스탄티누스 2세, 막시미아누스, 막센티우스 등과 경쟁을 벌였습니다. 콘스탄티누스는 312년 10월 28일에 이탈리아 북부 밀비우스 다리에서 막센티우스와 전투를 벌였으며 이 전투에서 콘스탄티누스는 승리하여 로마의 단독 황제가 되었습니다. 콘스탄티누스가 이 전투에서 승리하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째, 콘스탄티누스는 기독교 신자였고, 전투 전날 밤에 하늘에서 십자가의 환상을 보고 승리를 예언 받았다고 믿었습니다. 둘째, 콘스탄티누스는 군대를 잘 지휘하는 뛰어난 장군이었습니다. 셋째, 막센티우스의 군대는 당시 내분이 일어나 혼란스러운 상태였습니다. 결국 콘스탄티누스는 밀비우스 다리 전투에서 승리한 후, 로마 제국의 수도를 로마에서 비잔티움으로 옮기고 그의 이름을 따서 콘스탄티노플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2. 밀라노 칙령
밀라노 칙령은 313년 3월 13일에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대제와 그의 동서 공동 황제인 리키니우스가 발표한 칙령입니다. 이 칙령은 기독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에 대한 박해를 중단하고, 기독교인들에게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밀라노 칙령이 발표되기 전까지, 로마 제국에서는 기독교를 비롯한 모든 종교에 대한 박해가 자행되고 있었는데 2세기 말부터 시작된 기독교 박해는 3세기까지 계속되었고, 많은 기독교인들이 순교했습니다. 기독교 박해가 계속되던 중, 312년 10월 28일에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이탈리아 북부 밀비우스 다리에서 막센티우스와 전투를 벌였고 이 전투의 승리로 인해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로마의 단독 황제가 되었습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기독교 신자였고, 기독교 박해를 중단하고 기독교인들에게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싶었으며 로마 제국의 통치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기독교인들의 지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밀라노 칙령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기독교를 비롯한 모든 종교에 대한 박해를 중단한다. 이 조항은 로마 제국에서 자행되던 기독교 박해를 종식시켰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2. 기독교인들에게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다. 이 조항은 기독교인들이 자유롭게 종교 활동을 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였습니다. 3. 기독교 신자들이 빼앗긴 재산을 돌려준다. 이 조항은 기독교 박해로 인해 피해를 입은 기독교인들에게 재산을 돌려줌으로써, 기독교인들의 불만을 해소하고 기독교를 안정시키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3. 밀라노 칙령 이후의 기독교
밀라노 칙령으로 인해 기독교는 로마 제국에서 공인된 종교가 되었습니다. 밀라노 칙령 이전에는 기독교가 로마 제국에서 박해를 받아왔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자유롭게 종교 활동을 할 수 없었지만 밀라노 칙령으로 인해 기독교인들은 자유롭게 종교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고, 기독교는 더욱 빠르게 확산되었습니다. 밀라노 칙령 이전에는 로마의 박해로 인해 기독교 교회가 체계적으로 조직되지 않았으나 밀라노 칙령 이후 기독교가 공인된 종교가 되면서, 교회 조직이 더욱 확립되었습니다. 교회는 주교, 사제, 집사 등의 직제 체계를 갖추게 되었고, 교회법과 교회 예식이 정비되었습니다. 또한 밀라노 칙령 이후 기독교는 더욱 빠르게 성장하였는데 기독교인들은 자유롭게 종교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로 개종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로마 제국의 지배층도 기독교로 개종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또한 콘스탄티누스 대제 자신이 기독교 신자였기 때문에 기독교의 발전을 위해 많은 지원을 하였는데 그는 교회 건축을 장려하고, 교회 재정을 지원했으며, 기독교인들에게 특권을 부여했습니다. 밀라노 칙령 이후 기독교는 강력한 교리와 도덕 체계를 갖추게 되었으며 기독교인들은 마침내 열정적으로 종교 활동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밀라노 칙령 이후 기독교는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되었고, 유럽 문화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기독교는 오늘날까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신자를 보유한 종교로 발전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