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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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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콘스탄티노플로의 수도 이전 

    우선 로마의 지리적 위치를 살펴보면 로마는 서부 유럽에 위치한 도시로 티베르 강을 중심으로 발달한 도시이며, 지중해에 접해 있습니다. 그러나 로마는 서쪽으로 게르만족, 북쪽으로 알프스 산맥, 동쪽으로 동방 제국과 접해 있었는데 이러한 지리적 위치는 로마 제국의 통치를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게르만족은 로마 제국의 서쪽 국경을 위협하는 세력이었으며, 알프스 산맥은 로마 제국과 다른 지역을 연결하는 교통로를 가로막는 장애물이었습니다. 또한, 동방 제국은 로마 제국의 동쪽 국경을 위협하는 세력이었으며, 로마와 동방 제국 사이에는 종교적 갈등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지리적 위치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수도를 동쪽으로 옮기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로마 동쪽에 위치한 비잔티움이라는 도시를 새 수도로 삼았는데 비잔티움은 흑해와 지중해를 연결하는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게르만족과 동방 제국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수도 이전의 또다른 배경을 살펴 보면 우선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기독요인으로써 기독교를 로마 제국의 국교로 삼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도를 동쪽으로 옮기는 것이 유리했습니다. 그러나 로마는 오랫동안 로마 가톨릭 교회의 중심지였고 로마 가톨릭 교회는 로마의 귀족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로마에 수도를 두고 있으면, 기독교를 국교로 삼는 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반면, 콘스탄티노플은 기독교의 중심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콘스탄티노플을 수도로 삼으면, 기독교를 국교로 삼는 데 더 유리하다고 판단 했습니다. 또다른 배경으로는 당시 로마의 사회 문제를 들 수 있는데 로마 제국은 3세기부터 내란과 혼란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러한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수도를 건설하여, 로마 제국의 통치 체제를 재정비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콘스탄티노플을 새로운 수도로 건설하여, 로마 제국의 통치 체제를 재정비 하였으며 콘스탄티노플에 새로운 궁전과 의회, 교회 등을 건설하고, 도시를 방어할 수 있는 요새를 구축했습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이러한 노력으로, 콘스탄티노플은 로마 제국의 새로운 수도가 되었습니다. 콘스탄티노플은 로마 제국의 통치를 안정시키는 데 기여했으며, 그 후 동로마 제국의 수도로 1000년 이상 존속했습니다.

     

    2. 서로마의 몰락 

    서로마는 476년에 멸망했는데, 멸망의 원인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게르만족의 침입 입니다. 서로마가 멸망한 가장 큰 원인은 게르만족의 침입 입니다. 이들은 로마 제국의 북방에 거주하던 민족으로, 로마 제국의 약화를 틈타 로마 제국의 영토로 침입하기 시작했습니다. 게르만족은 로마 제국의 군대를 물리치고, 로마 제국의 영토를 점령하기 시작했습니다. 410년에는 알란족과 반달족이 로마를 약탈했으며, 455년에는 반달족이 로마를 다시 약탈했습니다. 게르만족의 침입으로 인해 서로마의 경제와 사회가 혼란에 빠졌고, 로마 제국의 통치력이 약화되었습니다. 둘째는 내부 분열 입니다. 서로마는 3세기부터 내부 분열이 심해졌습니다. 로마 황제들은 서로 권력을 다투었고, 이는 서로마의 통치력을 약화시키는 원인이 되었으며  395년에는 로마 제국이 동로마와 서로마로 분할되었습니다. 동로마는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안정을 유지했지만, 서로마는 내부 분열로 인해 혼란에 빠졌습니다. 셋째로 경제적 어려움을 들 수 있습니다. 당시 서로마는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해 있었으며 로마 제국은 노예 노동에 의존하는 경제 체제를 가지고 있었는데, 노예 제도의 붕괴로 인해 경제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또한, 서로마는 기근과 전염병 등으로 인해 인구가 감소하고, 경제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이러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서로마는 476년에 결국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3. 비잔틴 제국의 역사 

    비잔틴 제국은 395년 로마 제국이 동서로 분할된 후, 동쪽에 위치한 지역을 중심으로 발전한 제국입니다. 비잔틴 제국은 1453년 오스만 제국에 의해 멸망할 때까지 약 1000년 동안 존속하였으며 비잔틴 제국의 역사는 크게 4개의 시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제1기는 395년부터 610년까지의 기간을 말합니다. 이 시대에는 콘스탄티누스 대제와 유스티니아누스 대제가 비잔틴 제국의 황제로 재위했습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330년에 로마 제국의 수도를 로마에서 콘스탄티노플로 옮겼으며 유스티니아누스 대제는 527년부터 565년까지 재위하면서 비잔틴 제국의 전성기를 이끌었습니다. 그는 이탈리아 반도와 북아프리카를 정복하여, 로마 제국의 영토를 회복했습니다. 또한, 법전과 교회 정책을 정비하여, 비잔틴 제국의 법과 문화를 발전시켰습니다. 제2기는 610년부터 1025년까지의 기간을 말합니다. 이 시대에는 비잔틴 제국이 내부 분열과 외세의 침입으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7세기에는 아랍 제국이 비잔틴 제국을 침공하여, 시리아, 팔레스타인, 이집트 등 동방 지역을 점령하였으며 10세기에는 불가리아 제국이 비잔틴 제국을 침공하여, 발칸 반도의 일부를 점령했습니다. 제3기는 1025년부터 1204년까지의 기간입니다. 이 시대에는 마케도니아 왕조가 비잔틴 제국을 통치하면서, 제국의 부흥을 이끌었습니다. 마케도니아 왕조의 황제들은 뛰어난 군사력을 바탕으로, 아랍 제국과 불가리아 제국을 물리치고, 비잔틴 제국의 영토를 회복했습니다. 또한, 문화와 예술을 발전시켜, 비잔틴 제국의 황금기를 이끌었습니다. 제4기는 1204년부터 1453년까지의 기간입니다. 이 시대에는 비잔틴 제국이 라틴 제국의 침입으로 인해 멸망의 위기에 처했습니다. 1204년에는 제4차 십자군이 비잔틴 제국을 침공하여,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였는데 십자군은 비잔틴 제국의 영토를 분할하여, 라틴 제국을 세웠습니다. 1261년에는 팔라이올로고스 왕조가 비잔틴 제국을 재건하였지만 팔라이올로고스 왕조는 오스만 제국의 압박을 받으며, 점차 영토를 잃어갔습니다. 1453년에는 오스만 제국의 메흐메드 2세가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하여, 비잔틴 제국은 멸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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