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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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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알렉산더 장군들의 갈등

    알렉산더 대왕은 마케도니아 왕국의 왕으로, 기원전 356년부터 기원전 323년까지 약 30년 동안 동방을 정복하며 마케도니아 제국을 건설한 위대한 군주입니다. 그러나 알렉산더 대왕은 기원전 323년 32세의 나이로 갑작스럽게 열병으로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사망은 마케도니아 제국에 큰 혼란을 가져왔고, 그의 장군들 사이에는 왕위를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갈등이 벌어졌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장군들이 갈등하게 된 배경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알렉산더 대왕의 후계자 지명 문제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죽기 전에 자신의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아들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알렉산더 대왕의 장군들은 각자 자신의 아들을 후계자로 밀면서 갈등을 빚게 되었습니다. 둘째, 알렉산더 대왕의 제국 분할 문제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살아생전 자신의 제국을 그의 장군들에게 나누어 주겠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러나 알렉산더 대왕이 사망한 직후, 그의 장군들은 제국 분할 문제를 놓고 의견이 갈리면서 갈등을 빚게 되었습니다. 셋째, 알렉산더 대왕의 장군들 간의 개인적 갈등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장군들은 모두 뛰어난 군사 지휘관이자 야심찬 정치가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알렉산더 대왕의 사망을 계기로 자신의 야심을 실현하기 위한 기회로 삼고자 했습니다. 이에 따라 알렉산더 대왕의 장군들 사이에는 개인적 갈등도 함께 얽히면서 갈등이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장군들 간의 갈등은 결국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시리아의 셀레우코스, 마케도니아의 안티고노스 세 사람의 세력 다툼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세 사람의 세력 다툼은 디아도코이 전쟁으로 알려져 있으며, 약 50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디아도코이 전쟁의 결과, 마케도니아 제국은 세 개의 새로운 왕국으로 분열되었습니다.

     

    2. 디아도코이 전쟁

    위에서 언급한 디아도코이 전쟁은 크게 두 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단계는 기원전 322년부터 기원전 301년까지입니다. 이 단계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을 형성한 것은 안티고노스였습니다. 안티고노스는 알렉산더 대왕의 뒤를 이어 마케도니아의 왕으로 즉위하였고, 자신의 아들 데메트리오스를 후계자로 지명했습니다. 안티고노스의 세력이 커지자, 다른 장군들도 이에 대항하기 위해 동맹을 맺었습니다. 기원전 312년, 프톨레마이오스와 셀레우코스는 안티고노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그리스와 소아시아를 장악했습니다. 기원전 301년, 안티고노스는 리시마코스, 프톨레마이오스, 셀레우코스 연합군과의 전투에서 패배하여 전사했습니다. 두 번째 단계는 기원전 301년부터 기원전 281년까지입니다. 이 단계에서 프톨레마이오스와 셀레우코스가 세력을 확장하면서, 마케도니아는 점차 약화되었습니다. 기원전 281년, 프톨레마이오스의 아들 프톨레마이오스 케라우노스와 셀레우코스의 아들 안티오코스 1세는 마케도니아 왕위를 놓고 전쟁을 벌였습니다. 이 전투에서 프톨레마이오스 케라우노스가 승리하여 마케도니아의 왕이 되었습니다. 디아도코이 전쟁의 결과 세 개의 새로운 왕국이 등장했습니다. 첫째로 프톨레마이오스 왕국은 이집트를 중심으로 세워졌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 왕국은 이집트의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강력한 세력을 형성했습니다. 둘째로 셀레우코스 왕국은 시리아를 중심으로 세워졌는데 셀레우코스 왕국은 알렉산더 대왕의 제국을 계승하며 페르시아까지 세력을 확장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안티고노스 왕국은 마케도니아를 중심으로 세워졌습니다. 안티고노스 왕국은 마케도니아의 전통을 계승하였으며 그리스를 지배하려고 하였습니다. 

     

    3. 세 왕조 - 프톨레마이오스, 셀레이코스, 안티고노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이집트를 중심으로 세워진 왕국으로, 프톨레마이오스 1세 소테르가 초대 왕이 되었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이집트의 풍부한 경제력과 문화를 바탕으로 세력을 확장하여 지중해 동부 지역의 패권을 장악했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알렉산더 대왕의 유산을 계승하여 헬레니즘 문화를 전파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는데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수도 알렉산드리아는 헬레니즘 문화의 중심지로, 그리스와 동방의 문화가 융합되는 거점이 되었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기원전 30년 로마에 의해 정복될 때까지 약 300년 동안 존속했습니다. 셀레우코스 왕조는 시리아와 페르시아를 중심으로 세워진 왕국으로, 셀레우코스 1세 니카토르가 초대 왕이 되었습니다. 셀레우코스 왕조는 알렉산더 대왕의 제국 중 가장 큰 영토를 차지한 왕국으로, 그 영토는 동쪽으로는 인도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셀레우코스 왕조 역시 헬레니즘 문화를 전파하는 데에도 크게 기여했습니다. 셀레우코스 왕조의 수도 안티오키아는 헬레니즘 문화의 중심지로, 그리스와 동방의 문화가 융합되는 거점이 되었습니다. 셀레우코스 왕조는 기원전 64년 로마에 의해 정복될 때까지 약 200년 동안 존재 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안티고노스 왕조는 마케도니아와 그리스 지역을 중심으로 세워진 왕국으로, 안티고노스 1세 모노프탈모스가 초대 왕이 되었습니다. 안티고노스 왕조는 알렉산더 대왕의 후계자 지명 문제로 인해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와 셀레우코스 왕조와 갈등을 빚었고, 결국 디아도코이 전쟁에서 패배하여 마케도니아와 그리스 지역의 지배권을 잃었습니다. 안티고노스 왕조는 기원전 168년 로마에 의해 마케도니아가 정복될 때까지 약 150년 동안 존재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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