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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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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앗수르와 이스라엘

    앗수르와 이스라엘은 기원전 9세기경에 처음으로 만났습니다. 당시 앗수르는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주변 국가들을 정복하고 있었고, 이스라엘은 남과 북으로 나누인 분열왕국으로 국력이 약화되어 있었습니다. 앗수르는 이스라엘을 정복하기 위해 여러 차례 침략을 시도하였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사건은 기원전 8세기경에 일어난 아합 왕 때의 전쟁입니다. 아합 왕은 앗수르의 침략을 막기 위해 시리아와 동맹을 맺고, 앗수르와 전쟁을 벌였습니다. 그러나 앗수르는 시리아를 격파하고, 이스라엘에게도 큰 피해를 입혔습니다. 이 전쟁으로 이스라엘은 앗수르의 영향력 아래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앗수르는 이스라엘에게 조공을 요구하였고, 이스라엘의 정치와 외교에 간섭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기원전 7세기경 앗수르는 바벨론의 침략을 받아 멸망하였습니다. 앗수르의 멸망은 이스라엘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는데, 앗수르의 멸망으로 이스라엘은 앗수르의 간섭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중동 지역의 패권이 바벨론으로 넘어가면서, 이스라엘은 다시 새로운 위협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바벨론은 이스라엘을 정복하기 위해 여러 차례 침략을 시도했는데 기원전 597년에 바벨론은 유다 왕국을 정복하고, 유대 백성들을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기원전 586년에는 바벨론이 다시 이스라엘을 침략하여 유다를 완전히 멸망시켰습니다. 이로써 이스라엘은 앗수르와 바벨론의 두 강대국에 의해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앗수르와 이스라엘의 관계는 성경적, 기독교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앗수르의 침략은 이스라엘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우상 숭배와 부패로 타락한 상태였고, 하나님을 떠나 있었습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앗수르가 이스라엘을 침략하여 멸망시켰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앗수르의 침략은 이스라엘의 운명에 대한 예표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앗수르와 바벨론의 침략을 통해 멸망을 경험했습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멸망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지 않으면 결국 멸망을 맞이할 것이라는 경고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2. 바벨론과 이스라엘

    바벨론이 등장했을 때, 이스라엘은 분열왕국이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은 우상 숭배와 부패로 타락했고, 남유다는 다윗 왕조의 후손인 요시야 왕의 통치 아래에서 어느 정도 회복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앗수르와 마찬가지로 바벨론 역시 이스라엘을 정복하기 위해 여러 차례 침략을 시도하였는데 기원전 7세기경, 바벨론은 북이스라엘을 정복하고, 북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바벨론의 침략은 이스라엘에게 큰 슬픔과 고통을 가져다주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향 땅을 잃고, 가족과 친구들과 헤어져야 했습니다. 바벨론 포로 생활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큰 시련이었습니다. 바벨론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강제 노동에 동원했고, 우상 숭배를 강요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 포로 생활을 통해 많은 고난을 겪었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잊지 않고,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간구했습니다.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간구는 하나님께 들려졌고 다니엘과 같이 바벨론에서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바벨론은 기원전 6세기경에 페르시아의 침략을 받아 멸망했습니다. 페르시아는 바벨론 포로로 잡혀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켰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향 땅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고향 땅이 그동안 황폐해진 것을 보고 다시 한번 슬픔에 빠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향 땅을 재건하기 위해 노력하였는데 그들은 성전을 재건하고, 공동체를 회복하기 위해 힘썼습니다.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노력은 결실을 맺게 되었고 이스라엘은 점차 다시 번영을 누리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했습니다.

     

    3. 페르시아와 이스라엘

    페르시아는 기원전 539년에 바벨론을 정복하고, 바벨론 포로 생활을 하던 유대 백성들을 해방시켰습니다. 페르시아는 유대 백성들에게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할 수 있도록 허락하였고, 유대 백성들에게 자치권을 허용하였습니다. 이로써 이스라엘은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게 되었지만 페르시아의 지배는 이스라엘에게 새로운 기회가 되었습니다. 유대 백성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였고, 예언자들의 가르침을 통해 영적으로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페르시아와 이스라엘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였으며 페르시아의 왕들은 유대 백성들을 보호하였고, 그들의 종교적 자유를 존중했습니다. 페르시아의 왕 고레스 대왕은 유대 백성들을 해방시킨 후, 다음과 같이 선언했습니다. “너희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을 따라 너희의 성읍과 성소를 건축하라. 내가 너희를 도울 것이다.” (에스라 1:2-4) 페르시아의 왕 다리우스 대왕은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위한 물질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또한, 다리우스 대왕은 유대 백성들이 자치권을 누릴 수 있도록 다음과 같은 조치를 취했습니다. “유다 사람들은 자기의 율법과 그들의 조상들의 법도를 따라서 자기들의 율법을 따라 살게 하고, 그들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이 자기의 성소에서 자기의 율법과 그들의 조상들의 법도를 따라서 자기들의 율법을 따라 섬기게 하여라.” (에스라 7:14-26)  페르시아의 지배는 이스라엘이 멸망의 위기에서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습니다. 또한, 페르시아와 이스라엘의 우호 관계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성취를 보여주는 증거로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페르시아를 하나님의 도구로 묘사하는데, 에스라서는 페르시아의 왕들이 유대 백성들을 해방시키고,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도록 도와준 것을 하나님의 섭리로 설명합니다. 또한, 페르시아와 이스라엘의 우호 관계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른 민족들과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4. 헬라와 이스라엘

    기원전 4세기경, 알렉산더 대왕이 이끄는 헬라 군대가 중동 지역을 정복하였고 알렉산더 대왕은 이스라엘을 포함한 중동 지역을 헬라 제국의 일부로 편입시켰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은 이스라엘에게 큰 변화를 가져왔는데 우선 이스라엘은 헬라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 헬라 문화와 언어에 노출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헬라 문화를 받아들여, 헬라식 옷을 입고 헬라식 이름을 사용 하였으며 헬라 문화의 영향을 받아, 헬라식 신들을 숭배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기원전 2세기경, 이스라엘 사람들은 헬라 제국의 지배에 반발하여 마카비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마카비 전쟁은 이스라엘의 독립을 위한 전쟁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마카비 가문의 지도 아래 헬라 제국을 물리치고, 이스라엘의 독립을 이루었습니다. 마카비 전쟁은 이스라엘이 헬라 제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을 이루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또한, 마카비 전쟁은 이스라엘의 민족주의와 애국심을 고취시켰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헬라 제국의 이스라엘 정복은 이스라엘의 역사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는데 헬라 제국의 정복으로 이스라엘은 헬라 문화와 언어를 일부 받아들이게 되었고 이로 인해 이스라엘 문화는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마카비 전쟁은 이스라엘의 민족주의와 애국심을 고취시켰습니다. 마카비 전쟁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었고,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사명을 일깨워주었습니다.

     

    5. 로마와 이스라엘

    로마 제국과 이스라엘은 기원전 1세기경부터 본격적으로 관계를 맺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로마 제국은 지중해 전역을 지배하는 강대국이었고, 이스라엘은 로마의 지배를 받던 속주였습니다. 로마 제국은 이스라엘을 지배하면서 이스라엘의 종교와 문화에 대한 관용을 베풀었습니다. 로마 황제들은 유대인들의 종교적 자유를 보장하였고 유대인들은 로마 제국 내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로마 제국의 지배는 이스라엘에게 여러 가지 어려움을 가져다주었는데 예를 들어 로마 제국은 이스라엘의 정치와 경제에 간섭하였고, 이스라엘의 독립을 억압했습니다. 또한, 로마 제국의 문화와 가치관이 이스라엘에 퍼지면서 이스라엘의 전통문화가 위협받기도 했습니다. 기원후 1세기경에는 로마와 이스라엘 사이에 갈등이 심화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내에는 로마의 지배에 반대하는 유대인들이 늘어났고, 로마 제국은 이러한 유대인들을 탄압했습니다. 기원후 66년에 결국 이스라엘에서 로마에 대한 대규모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이 반란은 로마군에 의해 진압되었고, 로마는 예루살렘을 함락시켰습니다. 로마는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하고, 유대인들을 예루살렘에서 추방했습니다. 이 사건은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 가장 큰 비극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로마와 이스라엘의 관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기원후 1세기경에 이스라엘에서 태어났으며 일부 유대인들은 예수가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오신 메시아라고 믿었습니다. 다른 제국의 지배와 마찬가지로 로마 제국의 지배는 이스라엘에게 많은 고난과 시련을 가져다주었지만 이러한 고난과 시련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사역을 위한 준비 과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는 이스라엘에서 태어나, 로마 제국의 폭력과 억압에 맞서 평화와 사랑의 메시지를 전파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은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의 성취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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