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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스만 제국의 탄생 배경

    오스만 제국은 13세기 말, 한 때 소아시아라고 불렸으며 현재 터키 지역에 위치한 아나톨리아 북서부에서 탄생한 이슬람 제국으로, 19세기 말까지 약 600년 동안 세 대륙에 걸친 거대한 광활한 영토를 지배했습니다. 오스만 제국의 탄생은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이를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습니다. 오스만 제국을 건국한 튀르크인은 중앙아시아에서 출발하여 11세기경부터 아나톨리아로 점차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튀르크인은 뛰어난 기마술과 전투력을 바탕으로 아나톨리아에서 빠르게 세력을 확장해 나갔고, 1243년 몽골 제국의 침입을 계기로 아나톨리아를 통일하게 됩니다. 튀르크인의 이동과 정착은 오스만 제국의 탄생에 가장 중요한 배경으로 작용하였는데 튀르크인은 아나톨리아에 정착하면서 아랍 문화와 이슬람교를 받아들였고, 이는 향후 오스만 제국의 문화와 정체성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다음으로는  동로마 제국의 쇠퇴를 들 수 있습니다. 13세기 이후 동로마 제국은 십자군의 침략과 내전 등으로 인해 쇠퇴하기 시작했습니다. 1204년에는 제4차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하여 제국을 멸망시켰고, 이후 동로마 제국은 라틴 제국과 니케아 제국으로 분열되었습니다. 이러한 동로마 제국의 쇠퇴는 오스만 제국에게 기회로 작용 하였고 오스만 제국은 동로마 제국의 영토를 빠르게 정복해 나갔으며 1453년에는 마침내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하여 동로마 제국을 완전히 멸망시켰습니다. 마지막으로 11세기 이후 유럽에서는 이슬람교 세력의 확장을 막기 위한 십자군 운동이 전개되고 있었는데 십자군 운동은 유럽과 이슬람 세계 사이에 지속적인 갈등을 초래하였고 이는 오스만 제국의 확장을 촉진하는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십자군 운동을 통해 유럽과 이슬람 세계는 서로의 문화와 종교를 이해하게 되었고, 이는 이후의 교류와 협력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십자군 운동은 또한 양측의 갈등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고, 이는 오스만 제국의 확장을 위한 명분을 제공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오스만 제국의 탄생은 당시 주변 국가들의 시대적 배경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2. 오스만 제국의 시작

    오스만 제국의 창시자는 오스만 1세(1258~1326)입니다. 오스만 1세는 튀르크 계열의 부족장으로, 아나톨리아 북서부에서 작은 영지를 다스리며 세력을 키우기 시작 하였고 뛰어난 전투 실력과 용맹함으로 주변 부족들을 정복해 나가면서 점차 영토를 확장해 갔습니다. 오스만 1세의 뒤를 이어 무라트 1세(1326~1389)와 바예지드 1세(1389~1402)가 제위에 올랐습니다. 무라트 1세는 발칸 반도에 진출하여 세르비아와 불가리아를 정복하였고, 바예지드 1세는 1396년 니코폴리스 전투에서 십자군을 격파하며 유럽으로의 진출을 계획하기 시작 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예지드 1세는 1402년 안나톨리아에서 티무르 제국의 침략을 받아 패배하고 전사 하였으며 바예지드 1세의 죽음으로 오스만 제국은 내분에 빠지게 되었는데 그 후 약 10년 동안 내전이 지속되었습니다. 그 후 내전의 종식과 함께 오스만 제국은 다시 안정을 되찾고 영토 확장을 재개하였으며 특히 메흐메트 1세(1413~1421)는 내전을 수습하고 발칸 반도에서 세르비아와 불가리아를 재정복했습니다. 메흐메트 1세의 뒤를 이어 무라트 2세(1421~1451)와 메흐메트 2세(1451~1481)가 제위에 올랐습니다. 무라트 2세는 발칸 반도에서 세르비아와 불가리아를 완전히 정복했고, 메흐메트 2세는 1453년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하여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켰습니다. 콘스탄티노플의 함락은 오스만 제국의 위력을 유럽에 과시하는 사건으로, 오스만 제국의 영토 확장과 세력 확대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3. 오스만 제국의 콘스탄티노플 함락 과정

    1453년 콘스탄티노플의 함락은 비잔틴 제국의 종말과 오스만 제국의 시작을 의미했습니다. 콘스탄티노플의 함락 과정을 세 단계로 나누어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포위 공격과 준비 과정을 알아 보겠습니다  콘스탄티노플 포위 공격은 1453년 4월 초, 정복자 메흐메드로도 알려진 술탄 메흐메드 2세가 약 80,000~100,000명의 군인으로 구성된 군대를 이끌고 도시를 포위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내부 분쟁과 이전 갈등으로 약화된 비잔틴 제국은 도시를 방어하기 위해 인구의 극히 일부만을 소집할 수 있었습니다. 메흐메드 2세는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기로 결심하고 포위 공격을 준비하는 데 수년을 보냈는데 그는 도시의 성벽에 커다란 돌 발사체를 발사할 수 있는 유명한 "바실리카 대포"를 포함하여 거대한 대포의 건설을 준비 하였습니다. 오스만 제국은 또한 바다로 도시를 봉쇄하기 위해 함대를 건설하여 외부 지원으로부터 콘스탄티노플을 차단하였습니다. 반면 도시 내부에서는 비잔틴 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콘스탄티누스 11세 팔라이올로고스가 방어를 위해 백성을 집결시켰는데 비잔틴인들은 도시의 고대 성벽을 수리하고 강화했으며 장기간의 포위 공격에 대비했습니다. 다음으로 오스만군의 공격을 살펴 보겠습니다. 콘스탄티노플의 막강한 방어에도 불구하고 오스만군은 도시 성벽을 향해 무자비한 공격을 가했습니다. 그들은 요새를 무너뜨리고 도시로 진입할 목적으로 대포, 공성퇴, 기타 공성 무기로 성벽을 폭격하였는데 몇 주간의 격렬한 전투 끝에 1453년 5월 29일, 마침내 오스만군은 블라케르나이 궁전 근처의 도시 성벽을 뚫는 데 성공했습니다. 수비군은 용감하게 싸웠으나 오스만군의 맹공격에 결국 압도당했습니다. 성벽이 무너지자 메흐메드 2세는 그의 군대에게 도시를 습격하라고 명령하였고 오스만군은 콘스탄티노플로 몰려들어 비잔틴 수비군과 치열한 백병전을 벌였습니다. 침략자들을 격퇴하려는 필사적인 시도에도 불구하고 비잔틴 군대는 궁극적으로 오스만 제국의 공격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1453년 5월 29일 저녁, 콘스탄티노플은 오스만 제국에 함락되었습니다. 술탄 메흐메드 2세(Sultan Mehmed II)가 승리를 거두며 도시에 입성하여 비잔틴 통치가 끝나고 중세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 중 하나에 대한 오스만 제국의 지배가 시작되었습니다. 콘스탄티노플의 함락은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이후 천년 이상 지속되었던 비잔틴제국의 종말을 의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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