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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포에니 전쟁의 발단
포에니 전쟁은 고대 지중해 세력인 로마와 카르타고 사이에 벌어진 일련의 세 차례의 전쟁이었으며 로마는 이 전쟁의 승리로 세계 역사의 중심이 올라서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포에니 전쟁의 어원은 로마 인이 페니키아 인을 포에니라고 부른 데에서 유래하였습니다. 당시 카르타고는 땅이 비옥하고 지중해 통상의 요충지의 역할을 하기에 알맞은 현재의 아프리카 북부 튀지지 지역에 위치 하였습니다. 카르타고의 국가형태는 로마와 달리 1년 임기인 2명의 행정장관, 종신의원으로 구성된 원로원, 백인회(百人會:실제인원은 104명), 시민총회로서의 민회, 임기 무제한의 특별직, 장군 등을 가진 도시국가로서 실질적인 정치체제는 전형적인 과두제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용병제도를 채용한 점은 그리스 ·로마의 도시국가와는 근본적으로 달랐습니다. 서지중해의 해상권을 장악한 카르타고는 계속해서 서방을 향하여 판도를 넓혀 갔으며, 시칠리아의 패권을 둘러싸고 약 3세기에 걸쳐 그리스인과 충돌을 되풀이하였습니다. 또한 당시 카르타고는 시칠리아 섬의 서쪽에 있는 마그나 그라이키아(이탈리아 남부에 위치) 도시 국가들과 동맹을 맺고 있었습니다. 제1차 포에니 전쟁으로 알려진 제1차 전쟁은 기원전 264년에 발발하였는데 갈등의 근본 원인은 서부 지중해의 지배권을 차지하고자 하는 두 국가의 충돌이었습니다. 시칠리아 섬은 지중해의 중심에 위치하였는데 지중해를 지배 하고자 하는 국가에게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라고 할 수 있어서 그들 사이에 위치한 이 시칠리아를 모두 포기 할 수 없었습니다. 본격적인 군사적인 충돌은 기원전 264년, 시칠리아 섬에 있던 시라쿠사 왕국과 마그나 그라이키아 도시 국가들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는데 로마는 시라쿠사 왕국을 지원하기 위해 시칠리아 섬에 군대를 파병했습니다. 로마의 개입에 반발한 카르타고는 시칠리아 섬에 군대를 파병하였는데 이것이 포에니 전쟁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2. 포에니 전쟁의 전개
제1차 포에니 전쟁(기원전 264-241년): 제1차 포에니 전쟁은 주로 시칠리아를 지배하기 위한 투쟁이었습니다. 로마 해군은 경험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해상에서 카르타고에 도전하기 위해 강력한 함대를 구축했습니다. 수년간의 해전과 지상전 끝에 로마는 기원전 241년에 승리를 거두었으며 뒤따른 평화 조약으로 인해 카르타고는 시칠리아를 로마에 양도하고 막대한 배상금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전간기: 그러나 평화는 일시적이었습니다. 카르타고에 가해진 가혹한 상황은 분노를 불러일으켰고, 도시 국가는 힘을 회복하고 재건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제2차 포에니 전쟁의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제2차 포에니 전쟁(기원전 218-201년): 세 번의 전쟁 중 가장 유명한 이 전쟁은 주로 카르타고 장군 한니발에 의해 주도 되었습니다. 한니발은 잘 알려 진 대로 그의 군대와 함께 알프스를 넘어 상징적인 칸나이 전투를 포함하여 로마 땅에서 여러 차례 전투를 승리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한니발로 인해 로마는 약 50만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고 당시 로마는 한동안 한니발로인해 공포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이 상황을 타개하고자 로마의 스키피오는 원로원으로 지원을 받아 카르타고의 본진을 급습하였고 위기에 몰린 카르타고는 결국 한니발에게 본국으로 소환 명령을 내리게 됩니다. 스키피오와 한니발은 기원전 202년 자마 전투에서 맞붙게 되는데 이 전쟁에서 카르타고는 항복 했고 로마는 가혹한 조건을 부과하여 카르타고의 권력과 영토를 축소했습니다.
전간기(기원전 201-149년): 두 번째 전쟁으로 인해 카르타고는 약화되었지만 여전히 지중해 정치에 참여했습니다. 반면 로마는 지배력을 더욱 확고히 하였습니다.
3차 포에니 전쟁(기원전 149-146년): 카르타고의 위협을 제거하려는 열망에 힘입은 로마인들은 기원전 146년에 도시를 포위하고 결국 파괴했습니다. 카르타고는 불탔고, 그 영토는 합병되었으며, 주민들은 노예로 팔렸습니다. 이는 지중해의 강대국이었던 카르타고의 종말을 의미하였습니다.
3. 포에니 전쟁의 결과와 의의
로마는 포에니 전쟁의 승리로 인해 서부 지중해의 최고 권력으로 부상하였으며 시칠리아, 북아프리카, 스페인을 지배하게 되었고 로마공화국의 영향력과 영토를 크게 확장시켰고 본격적으로 로마 제국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때 로마의 강력한 경쟁자였던 카르타고는 완전히 멸망했으며 도시는 파괴되었고 주민들은 엄청난 고통을 겪게 되었습니다. 로마인들이 카르타고를 철저히 파괴하고자 하는 의지는 카르타고가 향후 농사를 짓는 것 까지 막기 위해 로마가 카르타고의 밭에 소금을 뿌렸다고 전해지는 소금밭 신화에서 알 수 있듯이 매우 강력했습니다. 포에니 전쟁은 로마 공화정의 발전에도 기여했습니다. 포에니 전쟁을 통해 로마는 강력한 군대를 양성하고, 행정 체계를 정비하며, 시민의식을 고취시켰습니다. 로마는 포에니 전쟁을 치르기 위해 강력한 해군을 양성해야 했습니다. 이를 위해 로마는 시민들에게 해군 복무를 의무화하고, 해군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또한, 로마는 포에니 전쟁을 통해 영토를 크게 확장하게 되었고, 이를 관리하기 위해 행정 체계를 정비해야 했습니다. 이를 통해 로마는 공화정 체제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로마는 이 전쟁을 통해 행정 체계의 중요성을 깨닫고 이를 정비하기 시작 하였으며 시민들의 애국심과 공동체 의식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