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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오스만 제국과 크림 전쟁
1853년부터 1856년 사이에 일어난 크림 전쟁은 오스만 제국, 러시아, 프랑스, 영국 등 당시 여러 강대국이 참여한 전쟁이며 오스만 제국의 관점에서 볼 때 이 전쟁의 원인으로는 발칸 반도와 코카서스 지역에서 지속된 러시아의 팽창주의를 꼽을 수 있습니다. 오스만 제국은 한때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세 대륙에 걸친 강력하고 광대한 제국이었지만 19세기에 이르러 여러 대내외적 요인으로 인해 쇠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내부적으로는 부패, 비효율성, 경제 침체로 인해 제국의 중앙 권위가 약화되었고 다양한 인구의 사회적 불안이 발생하였으며 대외적으로는 뛰어난 군사 기술과 식민지 야망을 지닌 유럽 열강의 등장으로 인해 오스만 제국은 중대한 도전을 받게 되었습니다. 오스만 제국이 약화됨에 따라 발칸 반도로 알려진 유럽 영토는 점점 더 불안정해졌고 오스만 통치로부터의 독립을 추구하는 여러 민족 및 민족주의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발생한 크림 전쟁을 촉발한 주요 요인 중 하나는 오스만 제국과 접경한 영토에 대한 러시아의 팽창주의 정책이었습니다. 러시아는 역사적으로 오스만 제국과 러시아 제국 사이에 분쟁 지역이었던 발칸 반도, 흑해 지역, 코카서스 지역에 대한 영향력과 통제력을 확대하려고 하였고 오스만 제국은 러시아의 확장이 제국의 영토 보전과 중요한 무역로, 특히 흑해를 통과하는 중요한 무역로에 대한 접근을 위협함에 따라 이를 더욱더 경계하게 되었습니다. 오스만 통치자들은 러시아의 팽창주의가 결국 제국의 붕괴와 유럽 영토의 상실로 이어질 것을 두려워하였고 오스만 제국과 러시아 사이의 긴장은 1853년 러시아가 오스만 제국에 속해 있던 루마니아와 몰도바의 영토를 점령하면서 고조되었습니다. 이에 대응하여 오스만 제국은 러시아에 전쟁을 선포하고 크림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크림 전쟁의 발발은 1853년 7월, 러시아가 오스만 제국에 속한 도나우 강 연안의 공국들을 공격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오스만 제국은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 싸우기로 결심하고, 영국과 프랑스로부터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는 러시아의 남하 정책을 견제하기 위해 오스만 제국을 지원하기로 결정하였으며 1853년 10월, 영국과 프랑스는 오스만 제국과 동맹을 맺고, 러시아에 선전포고했습니다. 크림 전쟁은 1853년부터 1856년까지 3년간 계속되었으며 전쟁은 주로 흑해와 크림 반도를 중심으로 벌어졌습니다. 전쟁 초기에는 러시아가 우세했습니다. 러시아는 흑해 함대의 우세를 바탕으로 오스만 제국의 해군을 격파하고, 크림 반도의 세바스토폴을 포위했습니다. 그러나 영국과 프랑스는 연합함대를 파견하여 러시아의 함대를 격파하고, 세바스토폴을 탈환했습니다. 또한, 영국은 흑해에서의 러시아 해군의 활동을 차단하기 위해 다르다넬스 해협을 봉쇄했습니다. 이 전쟁은 결국 1856년 파리 조약으로 종결되었고 이 조약으로 러시아는 오스만 제국에 크림 반도를 반환하고, 흑해의 중립을 인정했습니다.
2. 베를린 조약
베를린 조약은 1878년 7월 13일, 오스만 제국과 러시아,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헝가리 등 유럽 열강이 체결한 조약으로 크림 전쟁의 결과를 확정 하고자 체결되었습니다. 베를린 조약의 가장 중요한 내용은 러시아의 남하 정책을 견제하기 위한 조항들이었습니다. 러시아는 크림 전쟁에서 패배한 후, 오스만 제국에 대한 영향력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특히 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오스만 제국은 러시아의 남하 정책을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었고 러시아의 남하 정책이 자신들의 존립을 위협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베를린 회의는 1878년 6월 13일부터 7월 13일까지 독일의 베를린에서 개최되었고 이 회의에는 오스만 제국과 러시아,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헝가리 등 유럽 열강이 참석했습니다. 회의의 주요 의제는 크림 전쟁 이후 러시아의 남하 정책을 견제하기 위한 조항들을 마련하는 것이었는데 회의는 유럽 열강의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가운데 진행되었습니다. 러시아는 발칸 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하였지만 오스만 제국은 러시아의 남하 정책을 견제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또한, 영국과 프랑스도 러시아의 남하 정책을 반대하였기 때문에 결국 회의는 유럽 열강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회의는 러시아의 남하 정책을 견제하기 위한 조항들을 마련했지만, 러시아의 발칸 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완전히 차단하지는 못했습니다. 베를린 조약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오스만 제국에 병력을 철수하고, 흑해의 중립을 인정한다, 러시아는 발칸 반도에서 영향력을 축소하고,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영향력을 인정한다, 불가리아는 오스만 제국의 속국으로 남지만, 자치권을 확대한다, 루마니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는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한다입니다.
3. 크림 전쟁과 베를린 조약이 오스만 제국에게 끼친 영향
크림 전쟁은 오스만 제국의 국력을 크게 약화시켰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많은 병사가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었고, 막대한 재정이 소요되었으며 오스만 제국의 내부 분열을 더욱 심화시켰습니다. 또한 크림 전쟁의 결과, 오스만 제국의 영토는 축소되었습니다. 러시아는 크림 반도를 병합했고, 루마니아는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했습니다. 크림 전쟁의 패배는 오스만 제국 내에서 개혁 요구를 촉발하였고 유럽 열강들 역시 오스만 제국의 개혁을 요구하여 오스만 제국은 개혁을 추진하기 시작했습니다. 베를린 조약이 오스만 제국에게 끼친 가장 큰 영향으로는 우선 러시아의 남하 정책을 견제되었다는 것 입니다. 러시아는 발칸 반도에서 영향력을 축소하고,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영향력을 인정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베를린 조약은 발칸 반도에서 오스만 제국의 영향력 역시 약화시켰습니다. 불가리아는 오스만 제국의 속국으로 남았지만, 자치권을 확대하였고 루마니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는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했습니다. 또한 베를린 조약은 오스만 제국의 많은 영토를 축소시켰는데 불가리아, 루마니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의 독립으로 인해 오스만 제국의 영토는 1/3 이상이 줄어들었습니다. 크림 전쟁과 베를린 조약은 오스만 제국의 몰락을 가속화시킨 사건들이었습니다. 이 두 사건은 오스만 제국의 국력 약화, 영토 축소, 개혁 요구 등을 초래했습니다. 이러한 변화들은 오스만 제국의 근대화를 위한 노력을 어렵게 만들었고, 결국 오스만 제국의 멸망으로 이어졌습니다. 오스만 제국은 16세기부터 유럽과 아시아를 아우르는 거대한 제국으로 번성했지만 18세기 이후부터 유럽 열강의 침략과 내부 분열로 인해 점차 쇠퇴하기 시작했습니다. 크림 전쟁과 베를린 조약은 오스만 제국뿐만 아니라 유럽의 국제 질서에도 큰 영향을 미쳤는데 이는 유럽 열강의 세력 균형을 변화시켰고, 베를린 조약은 유럽 열강의 패권 경쟁을 심화시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