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서 방향을 잃은 인간들의 몸부림이 소설에는 뚜렷한 빛이 존재하지 않는다. 작품의 물리적 공간에는 온기 어린 햇살이 거의 비치지 않으며, 결정적인 비극들은 어김없이 눅눅한 진흙탕, 음산한 비, 안개 낀 늦은 밤과 새벽의 어둠 속에서 벌어진다. 그러나 이 물리적 환경보다 더 어두운 것은 작가가 펼쳐놓은 인간들의 내면세계다. 작품 속 수많은 인물을 바른길로 인도해 줄 단 하나의 숭고한 사상도, 영적 등대가 되어줄 인물도 등장하지 않는다. 오직 자기 자신과 타인을 파멸의 구렁텅이로 끌어내리려는 처절한 몸부림만이 가득하다. 소설을 읽으며 문득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블레이드 러너》가 떠올랐다. 영화의 무대는 문명의 오염과 끊임없이 내리는 산성비, 자욱한 안개로 태양 빛이 완전히 차단된 암울한 로스앤젤..
『죄와 벌』은 중학생 시절 방학 숙제로 처음 접한 작품이었다. 당시엔 두께 2cm 남짓한 ‘요약본’을 읽었기에, 이번에 완역본을 제대로 다루며 비로소 이 웅장한 분량을 실감하게 되었다. 어린 시절 기억에 남은 장면은 전당포 노파의 살해 장면이 거의 전부이다. 그러나 원작을 보니 그 사건은 서두에 불과했다. 지금 생각하면 수많은 핵심 사유가 생략되어 있었던 셈이다. 앞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마친 뒤 곧바로 『죄와 벌』을 읽었는데 두 대작은 등장인물과 중심 사상이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닮아 있다. 이 글에서는 이전 글 (『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과 마찬가지로 줄거리 요약은 최대한 배제하였으며 작가가 던지는 실존적 질문에 대한 나의 생각을 중심으로 서술하였다. 1. 초인이 되려는 자와 신이 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