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안토니우스 전염병의 배경 안토니우스 전염병은 서기 165년부터 180년 사이에 로마 제국 전역에서 발생한 전염병입니다. 이 당시 로마 제국은 세계 최대의 제국으로, 서유럽과 북아프리카, 중동, 소아시아에 걸쳐 광대한 영토를 차지하고 있었고 군사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도 크게 번영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여러 가지 사회 문제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첫째, 로마 제국은 내부적으로 갈등이 심화되고 있었습니다. 1세기 말부터 2세기 초까지 로마 제국은 내전과 반란이 끊이지 않았는데 황제와 원로원 사이의 권력 다툼, 노예 반란, 국경지대의 반란 등이 로마 제국의 안정을 위협하고 있었습니다. 둘째, 로마 제국은 인구 증가와 식량 부족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로마 제국의 인구는 1세기 말부터 급격히 ..
1. 오현제의 등장 로마의 5현제 시대는 로마 제국의 전성기 중 하나로, 네르바 황제가 선제관살해로 집권한 서기 96년부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사망한 180년까지 약 80년간 지속되었습니다. 이 시대는 로마 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발전과 번영을 이루었던 시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5현제 시대가 시작되기 직전의 로마 제국은 정치적 혼란과 불안정으로 얼룩져 있었는데, 네르바 황제의 전임자인 도미티아누스 황제는 폭군으로 악명 높았고, 그의 사망 이후에는 황제 자리를 둘러싼 내전이 계속되었습니다. 또한 로마 제국은 1세기 동안 끊임없는 전쟁과 내전을 겪었습니다. 이러한 혼란으로 인해 로마 시민들은 평화를 갈망하게 되었는데 이 혼란 속에서 네르바 황제는 선제관을 살해하면서 집..
1. 폼페이 화산의 폭발 폼페이 화산 폭발 당시의 로마는 서기 79년 8월 24일이었으며 이탈리아 반도 중부에 위치한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여 인구 약 2만여 명의 도시 폼페이를 잿더미로 만들었습니다. 당시 로마 제국은 네로 황제의 통치하에서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었으며, 로마는 지중해 전역을 지배하는 강대국으로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폼페이는 로마 제국의 번영을 상징하는 도시 중 하나로 이탈리아 반도 남쪽에 위치한 나폴리 만 연안에 있는 도시였습니다. 로마의 식민지 도시로였으며 번성한 무역항이자 휴양지였고 무엇보다 아름다운 자연 경관과 화려한 건축물, 풍요로운 문화를 자랑하는 도시였습니다. 폼페이는 화산이 폭발 하기 전인 서기 62년에 이미 대규모 지진이 발생하여 큰 피해를 입었으나 복구 작업이 진행되면..
1. 콜로세움 경기장 건설의 배경 콜로세움이 건설될 당시인 서기 1세기에는 로마 제국이 최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로마 제국은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전역에 걸쳐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고, 경제와 문화도 크게 발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로마 제국은 내전에 휩싸였는데 이로으로 인해 로마는 황폐해졌고, 시민들의 불만이 높아졌습니다. 이에 베스파시아누스 황제는 내전을 종식시키고 새로운 왕조를 세웠으며 콜로세움을 건설하여, 자신의 새 왕조를 국민들에게 알리고자 하였습니다. 특히 로마 제국은 대규모 공공사업들을 통해 국민들의 지지를 얻고자 하였으며 도로, 다리, 수도, 공중 목욕탕 등 다양한 공공시설들을 건설했습니다. 콜로세움도 이러한 대규모 공공사업 중 하나였습니다. 콜로세움은 로마 시민들이 다양..
1. 유대-로마 전쟁의 배경 유대 로마 전쟁은 서기 66년부터 70년까지 일어난 전쟁으로, 로마 제국과 유대인 사이에 벌어진 전쟁입니다. 이 전쟁은 유대인의 독립을 위한 전쟁이었지만, 로마 제국의 승리로 끝나면서 유대인의 독립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유대 로마 전쟁의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유대인의 역사와 로마 제국의 역사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유대인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살던 민족으로, 기원전 13세기경에 가나안 땅에 정착했습니다. 로마 제국은 기원전 27년부터 서기 476년까지 존재했던 고대 세계의 강대국으로,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전역에 걸쳐 세력을 확장했습니다. 유대 로마 전쟁이 일어나기 전, 유대는 로마 제국의 속주였습니다. 유대인들은 로마의 지배에 불만을 품고 있었는데, ..
1. 제 2차 삼두 정치 로마의 삼두 정치는 로마 공화정의 붕괴를 앞당긴 중요한 사건 중 하나입니다. 1차 삼두 정치는 기원전 60년, 율리우스 카이사르, 폼페이우스, 크라수스 세 사람이 로마의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결성한 정치 동맹입니다. 그러나 1차 삼두 정치는 크라수스의 죽음으로 붕괴되고,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 사이의 대립으로 이어졌습니다. 2차 삼두 정치는 카이사르의 암살 이후 로마의 권력 공백을 메우기 위해 결성되었는데 옥타비아누스, 안토니우스, 레피두스 세 사람이 로마의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결성한 정치 동맹이었습니다. 옥타비아누스는 카이사르의 양자가 되어 그의 유산을 계승 하였고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의 부하 장군으로서 로마의 동방 지역을 지배하고 있었으며 레피두스는 이탈리아와 북아프리카를 지..
1. 카이사르 암살의 시대적인 배경 기원전 44년, 카이사르가 암살당한 시기는 로마 공화정 말기의 혼란스러운 시기였습니다. 기원전 2세기부터 로마의 영토가 급속도로 확장되면서 로마는 많은 새로운 영토를 정복하고 통치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정복은 로마의 재정 부담을 가중시켰고, 사회 불안을 야기했으며 로마 공화정의 정치 체제는 점차 붕괴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에 로마 공화정은 원로원이 최고 권력을 가진 체제였는데 기원전 2세기부터 원로원은 점차 독재화되어갔습니다. 이들은 집정관의 권한을 제한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정치를 이용했습니다. 로마 공화정은 귀족과 평민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귀족들은 자신들의 특권을 지키기 위해 평민들의 권리를 억압하였고 이로 인해 귀족의 부와 권력은 점점 집중 되었으며 평민..
1. 카이사르는 왜 갈리아를 정복 하려고 했는가 갈리아는 오늘날 프랑스, 벨기에, 스위스, 네덜란드, 룩셈부르크의 일부를 포함하는 지역으로, 기원전 1세기에는 약 40여 개의 부족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이들은 각 부족마다 독자적인 문화와 언어를 가지고 있었으며, 서로 끊임없이 전쟁을 벌이고 있었는데 이러한 상황은 로마에게 안보적인 위험 요소 였습니다. 특히 갈리아의 북쪽에 거주하던 게르만족은 로마의 가장 큰 잠재적인 위협이었습니다. 갈리아 지역에는 금, 은, 구리, 철 등 다양한 광물이 매장되어 있었고, 비옥한 토지를 가지고 있어서 농업과 목축업이 발달했습니다. 기원전 60년경, 로마 공화국의 집정관이었던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갈리아 총독으로 임명되었으며 그는 로마의 영토를 확장하고 로마의 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