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알렉산더 대왕의 그리스 반도 정복 알렉산더 대왕이 태어난 기원전 4세기 당시, 그리스 반도는 폴리스(도시 국가)들의 분열로 인해 많은 혼란에 빠져 있었습니다. 폴리스들은 서로 경쟁하며 싸웠고, 이로 인해 그리스 반도는 약해졌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인 필리포스 2세는 마케도니아의 왕으로서, 그리스 반도를 정복하기 위해 노력 하였는데, 그는 기원전 338년에 그리스 도시 국가들과 코린토스 동맹을 결성하였고, 자신의 오랜 염원이었던 페르시아 제국을 정복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필리포스 2세가 암살 당하였고, 알렉산더 대왕은 마케도니아의 왕으로 즉위했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그리스 반도를 완전히 정복하고자 하였습니다. 우선 알렉산더 대왕은 기원전 3..

1. 헬레니즘 제국 헬레니즘 제국은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 이후의 고대 역사 시대를 가리키며 이 시기는 기원전 4세기 후반부터 기원전 1세기까지 입니다. 이 시대는 그리스 문화와 정복된 지역(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의 문화가 융합되어 거대하고 영향력 있는 제국을 건설한 시대입니다. 기원전 356년 마케도니아에서 태어난 알렉산더 대왕은 역사의 흐름을 바꿀 여러 대규모의 전쟁을 일으켰으며 승리 하였습니다. 그의 아버지인 필리포스 2세 왕은 이미 그리스 본토 대부분을 통합했고, 필리포스 2세의 사망으로 알렉산더는 강력한 군대를 물려받았습니다. 기원전 334년에 그는 당시 이 지역의 지배 세력이었던 페르시아 제국을 정복하려고 했는데 이것은 아버지 필립 2세가 이루지 못한 꿈 이기도 했습니다. 그 후 10년 동안..

1. 로마 법률과 제도의 계승 로마는 법치주의의 전통을 확립한 나라로, 로마법은 유럽의 법률 발전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로마 멸망 이후에도 로마법은 유럽의 많은 국가에서 법률의 근간이 되었으며, 오늘날에도 세계 각국의 법률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로마법의 계승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는 프랑스로, 프랑스는 로마 법률을 바탕으로 1804년에 나폴레옹 법전을 제정하였습니다. 이는 프랑스의 법률 체계에 큰 변화를 가져왔고 또한 유럽의 다른 국가들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독일 민법은 로마법의 원리와 개념을 바탕으로 하여 제정되었으며, 이 역시 향후 독일의 법률 체계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또한, 독일 민법은 유럽의 다른 국가들에도 큰 영향을 미쳤으며, 이는 로마법의 보급과 발전에 중요한..

1. 4차 십자군의 콘스탄티노플 약탈 4차 십자군은 1202년 6월, 베네치아 공화국의 지원을 받아 이탈리아의 트리에스테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십자군은 성지 예루살렘으로 향하지 않고, 베네치아 공화국의 요구에 따라 달마티아의 자다르를 공격하여 점령했습니다. 자다르 공격은 십자군의 원래 목적과는 맞지 않는 행동이었지만, 베네치아 공화국의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결국 십자군은 1203년 7월, 콘스탄티노플에 도착했습니다. 콘스탄티노플은 동로마 제국의 수도이자, 당시 세계 최대의 도시 중 하나였습니다. 십자군은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하기 위해 준비를 했지만, 콘스탄티노플은 견고한 성벽과 강력한 군대로 인해 쉽게 함락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십자군은 베네치아 공화국의 함대를 이용하여..

1. 벨리사리우스의 등장 배경 벨리사리우스는 6세기 동로마 제국의 쇠퇴기에 활약한 뛰어난 장군으로 505년 아나톨리아에서 태어났습니다. 벨리사리우스의 등장 배경은 당시 유럽의 상황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습니다. 5세기 중반에 고트족의 침입을 받아 수도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었고, 이후에도 아바르족, 페르시아 제국 등의 침략을 받아 영토를 잃어갔습니다. 동로마 제국의 내부적으로는 왕좌를 장악하기 위해 다양한 세력이 서로 경쟁 하면서 경쟁하면서 권력 투쟁이 반복 되었습니다. 이러한 침략과 사회적 혼란으로 인해 동로마 제국은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는데 벨리사리우스는 이러한 상황에서 등장한 장군입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뛰어난 군사적 재능을 보였고, 20대 초반에 이미 장군으로 승진했습니다. 532년, 니카의 반란을..

1. 유스티니아누스 1세의 등장 서로마 제국의 뒤를 잇는 동로마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1세는 서기 527년 동로마 제국의 황제로 즉위했습니다. 당시 동로마 제국은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 서유럽의 유일한 로마 제국의 계승 국가였지만 서로마 제국의 멸망으로 인해 동로마 제국은 서유럽의 영토를 잃었고, 제국의 영토는 소아시아, 발칸 반도, 시리아, 이집트 등으로 축소되었습니다. 또한, 동로마 제국은 주변의 사산 제국, 훈족, 게르만족 등의 침략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스티니아누스 1세는 서로마 제국의 영토를 회복하고, 로마 제국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야심찬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는 벨리사리우스, 나르세스 등 뛰어난 장군들을 등용하여 서유럽과 북아프리카의 영토를 회복하기 위한 전쟁을 시..

1. 서로마의 몰락 서로마 제국은 476년 로물루스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퇴위로 멸망했습니다. 서로마 제국의 몰락에는 내부적 요인과 외부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는데 우선 내부적 요인을 살펴 보면 우선 사회적 불안정을 들 수 있습니다. 서로마 제국은 3세기 말부터 내전과 사회 혼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황제의 권위가 약화되고, 귀족들의 세력이 강해지면서, 사회는 불안정해졌습니다. 그리고 서로마 제국은 3세기 말부터 경제적 쇠퇴를 겪었는데, 농업 생산성이 저하되고, 상업 활동이 위축되면서, 제국의 경제는 어려워졌습니다. 서로마 제국의 관료제는 부패와 무능으로 인해 제국의 행정을 마비시켰습니다. 관료들은 세금을 착복하고, 부정과 비리를 일삼았는데, 이러한 내부적 요인들은 서로마 제국의 국력을 약화시키고, 멸..

1. 서고트족 서고트족은 4세기경에 발트해 연안에 살던 게르만족의 한 갈래입니다. 당시 발트해 연안에는 많은 게르만족들이 살고 있었는데, 서고트족은 그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부족 중 하나였습니다. 서고트족은 3세기 말부터 로마 제국의 압박을 받아 서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로마 제국은 2세기부터 게르만족의 침입을 받아왔는데, 3세기 말에는 게르만족의 침입이 더욱 거세졌습니다. 서고트족은 로마 제국의 방어를 뚫고 서쪽으로 계속 이동했습니다. 410년에는 서고트족의 왕 알라리크가 결국 로마를 침공하여 약탈했습니다. 알라리크의 침공으로 로마 제국은 큰 타격을 입었고, 마침내 476년에 멸망하게 됩니다. 서고트족은 로마를 침공한 후에도 계속 서쪽으로 이동하였으며 418년에는 프랑크 왕국과 협정을 맺고 로마..